기적의 40일

기적의 40일 23일차 : 올바른 신앙의 길 -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

조회 : 35 | 심태석

 

두란노성서아카데미 기적의 40일 ㉓

https://youtu.be/YNOx86gSDyI

 

올바른 신앙의 길 -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
삼상 6:7-15

법궤 이야기
①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배 – 법궤를 가져가서 싸움 – 전쟁에서도 패함. 홉니와 비느하스 죽음 법궤를 빼앗김 – 이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이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음
② 법궤의 빼앗긴 결과/ 법궤의 이동 에벤에셀에서 아스돗으로 -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둠 - 다음 날 아침 다곤이 엎드러짐 – 다시 그 자리에 세움 - 그 다음 날 아침 다곤이 엎드러져 있고 두 손목이 끊어져 있음. - 아스돗에 독한 종기의 재앙이 내림 - 법궤를 가드로 옮겨감 – 가드 역시 독한 종기의 심판 - 법궤를 다시 에그론으로 보냄(법궤가 블레셋을 심판)
③ 법궤를 다시 이스라엘로 보내기로 결정/ 법궤를 빼앗아 갔던 블레셋 사람들이 자신들의 다곤 신상이 부러지고, 독종이 온 지역에 퍼지는 재앙을 경험한 후에 하나님의 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기로 하였다.


법궤를 돌려보내는 블레셋 사람들
①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통이 법궤로 인한 것이라 생각하고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의 의견을 물은 후에 법궤를 돌려보내기로 한다. 속건제를 드리고, 금독종 다섯과 금쥐 다섯의 형상을 만들어 함께 돌려보낸다.(삼상6:3-4)
② 왜 속건제를 드리는가? 속건제는 원래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제사법이다. 그런데 블레셋 제사장들은 이스라엘의 제사법대로 속건제(하나님의 성물을 범했을 때 드리는 제사는 속건제가 맞다)를 드리고 보내라는 것이다. 이들이 속건제를 드리는 이유는 자신들의 죄를 속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기 위함이었다.
③ 속건제의 제물/ 그들이 속건제에서 바친 제물은 금 독종 다섯과 금 쥐 다섯 마리였다.
금 독종/ 하나님의 심판으로 발생한 독종의 모양(환부의 모양)을 금으로 만든 것
금 쥐/ 블레셋 사람들이 자신들이 받은 재앙이 쥐를 통하여 왔다고 생각.
그래서 금 독종과 금 쥐의 형상으로 다섯 개씩 만들어 제물을 바치면 다섯 블레셋 도시에 임한 재앙이 사라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④ 제사의 목적은 죄의 문제 해결/ 하지만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기 위한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이것이 종교적 신앙(불신앙)이다. 우리에게 불신앙이란 단순히 우상이나 미신을 섬기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과 불신앙의 분명한 구분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가로 결정된다. 재앙을 피하기 위해 땅의 복을 누리기 위해 드리는 제사는 아무리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라 할지라도 불신앙에 속하는 것이다.(우리 자신들의 신앙을 되돌아보자.)
복음적 신앙/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붙잡는 신앙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 죄에 대한 상한 심령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갈망이다.
⑤ 우연인가 하나님의 섭리인가/ (삼상6:9) 보고 있다가 만일 궤가 그 본 지역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요 우연히 당한 것인 줄 알리라 하니라
⑥ 수레를 보내는 방법/ (삼상6:7) 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삼상6:12하)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⑦ 우연을 바라는 마음/ 도저히 벧세메스로 갈 수 없는 조건으로 하나님의 일을 시험한다.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소(경험이 없다)/ 젖 나는 소, 송아지들은 떼어 내 집으로 보냄(육정)
게다가 제대로 가는지 블레셋 방백들이 따라간다. 왜 따라가는가? 응원해주려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악한 마음을 가지고 따라 간 것이다. 잘 가면 하나님 뜻이구나 하고 법궤를 돌려보내고, 못가면 우연이구나 생각하고 법궤를 도로 빼앗아 오려고 따라가는 것이다.
⑧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우연이 없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 모든 상황이 우리를 하나님나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과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든 것을 우연으로 돌리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일을 거부하려는 불신앙을 갖고 있다.
⑨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인생을 하나님이 다스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인가 우연인가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마음 그 자체가 불신앙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마음 자체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는 죄악 된 마음 때문이며, 신앙의 방향이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한다면 나에게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연인가 하나님의 일인가를 따지기 전에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상황과 모든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내 마음이 모아지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벧세메스로 가는 소
① 선택된 소/ (삼상6:7) 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② 사명의 멍에를 메는 소(사명의 소)/ (삼상6:10) 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 새끼를 떼인 소/ 결단 - 보조를 맞춘 소/ 하나 됨
③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소 – 사명자의 걸음(바로 가는 소)
(삼상6: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 벧세메스(태양의집)로 향하는 걸음/ 빛이 있는 곳, 생명이 있는 곳. 하나님 나라를 뜻한다.
- 육신의 정에 붙들리면 안 되는 걸음이다.(젖 먹는 송아지)
- 세상 실력에 영향 받으면 안 된다.(멍에를 매어보지 않는 암소를 골랐다. 경험이 없는 소)
- 사람 눈치를 보면 안 된다.(따라오는 블레셋 방백들)
벧세메스로 가는 소는 사람들이 따라오던 말든, 잘 하나 두고 보자는 심보를 갖든 말든 내 사명을 감당하려고 꿋꿋이 앞으로 나아갔다. 이것이 참 사명자의 자세다. 기도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뻐하는 일이라면 순종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꿋꿋이 해 나가면 결국은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사람도 이해를 하고, 하나님 영광 받고, 사명자가 복을 받는 열매가 맺어지게 된다.
④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소 – 하나님의 일(인도하심) 사람의 일(최선을 다한 소)
⑤ 희생제물이 된 소 – 십자가의 희생/ (삼상6:14-15)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 (15)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니라
참 사명자는 바로 법궤를 맨 암소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영광이나 이름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제단이 오직 든든한 반석 위에 서도록 하고 자신은 제물이 되는 사역을 감당하게 된다.이것이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가 보여준 영적교훈이다.


기적의 40일/ 우리는 벧세메스로 가는 소다. 사명자의 걸음을 걸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신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의 계획하신 구속사가 성취된다.
하나님의 섭리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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