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성경통독

고린도후서 11-13장

조회 : 154 | 박인규

고린도후서 11장/ 사도 바울은 자신을 중매쟁이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소개하는 신랑이 얼마나 멋지고 좋은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낸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신랑은 세상의 영광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신 분이십니다. 그 안에 완벽한 죄 사함이 있고 영원한 용서가 있습니다. 흠도 티도 없는 정결한 신부로 세우시는 능력이 그 보혈 안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여 죄인을 예수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 드리는 중매자의 역할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죄인이 흠이나 점도 없이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까? 우리의 한 남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안에서 정결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복음으로 중매하여 놓은 고린도교회에 거짓 선지자들이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바울을 공격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서 연보를 받지 않는 것에 대하여 공격하기를 연보를 받지 않고 복음을 값없이 전한 것을 보니 사도의 자격이 없기에 받지 않는다고 공격합니다. 또 고린도교인을 사랑하지 않기에 받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왜 연보를 받지 않은 것입니까? 다른 여러 교회들에게서 연보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의 사역에 부족함이 많았지만 다른 교회에서 연보를 받아서 고린도교회를 섬기기 위하여 연보를 받지 않고 사역한 것이 죄를 지은 것이냐고 아주 강하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이며 또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향하여 거짓 사도, 속이는 일꾼이라고 말합니다. 사단의 일꾼들은 자신의 외모를 자랑합니다. 사도 바울은 어쩔 수 없이 육체를 자랑하는 자들에게 자신을 드러냅니다. 하나는 출신 배경입니다(22-23절) 또 하나는 그리스도를 향한 수고입니다.(23-27절) 바울은 거짓 교사들로 인하여 교회를 향한 염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다 자기의 잘남과 세상의 영광을 자랑하는데 자신은 약함만을 자랑하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교회를 염려하는 바울의 모습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사도 바울이 부득불 자랑하겠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체험을 간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는데 14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갔다는 것입니다. 그 셋째 하늘에서 이끌려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고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셋째 하늘까지 보고 온 사도에게 하나님은 능력을 베푸시기는커녕 오히려 사단의 가시를 허락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그 사단의 가시를 제거하여 달라고 세 번이나 간구하였는데 하나님께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시면서 약할 때에 온전하고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의 약함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한다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이 외모를 자랑하는 자들에게 빠졌기에 어쩔 수 없이 어리석은 자랑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사도된 표는 무엇입니까? 자신이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참된 사도의 표는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입니다.(12절) 어떤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 나타나더라고 그것을 모두 주님의 은혜에 돌리고 자신은 숨는 것이 참된 사도의 표인 것입니다. 그런데 가짜들은 그것을 자기의 영광으로 드러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방문하면서 너희에게 폐를 끼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구하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바로 너희라고 말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갈 때에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않게 될까 두렵고 너희가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내가 보일까 두렵다고 말합니다.(20절) 이 말씀은 고린도교인들이 그리스도 앞에서 바로 세워지기를 바라는데 그렇게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되고 또 고린도교인들이 자신을 잘 못 보게 될까 염려라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너희에게 다시 갈 때에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렵다고 말합니다. 바울의 겸손과 희생이 고린도교인들이 평소에 바울을 별볼일없는 사람으로 여긴 것처럼 될까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 (고후13:2)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 사도 바울이 용서하지 않겠다는 죄가 무엇입니까?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죄악입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자기 기준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임하게 되면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예수님을 믿지 않고 내가 나를 믿고 내 결정과 내 인생의 야망을 위하여 살아온 모든 것이 죄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죄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죽으신 것을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 그리스도가 마음에 계시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라는 것인데 이것이 은혜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믿음에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파하려 하지 않고 세우려고 한다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동일한 책망을 받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과연 믿음의 모습입니까? 날마다 순간마다 사건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신지, 그 분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물어보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의 마지막 말입니다. (고후13:11-13)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12)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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