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성경통독

고린도후서 1-4장

조회 : 183 | 박인규

고린도후서 서론/ 사도 바울의 3차 전도여행 기간 중 마게도냐(빌립보)에서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편지를 보낸 이유는 유대주의자들로부터 사도권의 문제로 공격당하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정상적인 관계 회복을 원하기 때문이며, 예루살렘 교인들을 구제하기 위한 연보의 모금을 호소하기 위함입니다. 특별히 고린도후서는 다른 복음을 전파하려는 자들과 복음을 보수하려는 자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격전장으로서, 혼란에 빠져있는 이 시대 현대교회에 가장 적절한 말씀이라 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며 찬송이 먼저 터져 나옵니다. 알고 보면 사도 바울은 지금 그럴만한 상황이 아닌데도, 여러 환난과 고통의 상황 속에서도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먼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환난을 받은 것은 고린도 교인들의 위로와 구원을 위해서 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바울 자신이 환난 속에서 능히 그리스도로 기뻐하고 위로받는 모습을 통해서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위로가 되고 구원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기도로 자신을 도우라고 부탁합니다. 고린도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행함은 육체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행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은 혹시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원래 사도 바울의 계획은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이 변경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는 것입니다.(23절) 만일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방문하게 되면 문제를 일으킨 성도들을 치리할 수밖에 없는데, 먼저 편지를 통해 회개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아끼는 마음에서 고린도교회를 방문하지 않은 것인데 사도 바울이 이 문제로 오히려 공격을 받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이 복음전도를 통하여 세운 교회로서 그들의 믿음이 세워져 있기에, 바울은 그들의 믿음을 주관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2장/ 사도 바울은 근심으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나아가지 않기를 결단하였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방문하게 되면 책망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근심하게 하는 것이기에 근심하지 않고 기쁨으로 만나기 위하여 방문을 연기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눈물로 편지를 썼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편지는 사라졌다고 보는데, 이 편지를 통해 사도 바울의 강력한 책망을 받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회개하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사도 바울을 근심하게 하는 자가 있었지만 이미 회개에 이르게 되었기에 이제는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갔는데 주 안에서 복음의 문이 열렸지만 디도를 만나지 못함으로 마게도냐로 가게 됩니다. 마게도냐에서는 사도 바울이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는 상황이었지만 디도가 옴으로 위로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향기라 말한다. 그런데 이 향기는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또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는 것입니다.(14-16절)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말은 우리를 통하여 드러나는 십자가의 도를 말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십자가의 도가 증거되어질 때 이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의 향기는 땅의 향기가 아니라 하늘의 향기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내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거나 추천서를 보낼 필요가 있느냐고 말합니다.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추천서를 들고 와서 자기를 증명하려고 하지만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의 증거는 바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새 언약의 일꾼으로 세우셨음을 선포합니다.(6절) 새 언약의 일꾼이란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하는 것인데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입니다. 새 언약이 있다면 옛 언약이 있다는 것인데 옛 언약은 율법 조문으로 우리를 죽이는 것이고 새 언약은 성령으로 우리를 살리는 것입니다. 율법 조문과 같은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는데, 길이 있을 것(새 언약, 십자가의 복음)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하늘의 영광을 모른 채 세상 영광만을 바라보고 삽니다. 그러기에 화려한 세상 영광을 가진 예루살렘 순회전도자들에게 속아, 하늘 영광을 가진 사도 바울을 오히려 멸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 언약의 일꾼이 어떤 영광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 영광은 세상 영광이 아닌 하늘의 영광이요 십자가의 영광입니다. 사도 바울이 소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소망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영광을 볼 소망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담대히 말하는데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없어질 영광이 아닌 영원한 영광이기에 모세의 수건과 같은 것을 가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12-14절) 주께로 돌아가지 않고 여전히 율법에 묶여 있는 자들은 자유함이 없습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는 것입니다. 주의 영이 임한 자에게는 주님의 십자가가 영광이 보여지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함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16-17절)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봅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내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영광이 아닙니다. 주의 영이 임한 곳에 자유함과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사도 바울이 받은 직분은 영의 직분이요 살리는 직분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의 직분입니다. 반면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직분은 사람의 추천서를 가진 직분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직분은 하나님의 긍휼로 된 것이기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우리의 실력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3-4절)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하나님의 창조의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질그릇에 이 보배를 가진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은 나의 질그릇이 좀 더 멋진 질그릇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질그릇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보배를 담고 있는 것이 은혜요 능력인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진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인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십자가의 죽음의 삶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의 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의 자랑거리를 가지고 오는 거짓 선생들에게 속지 말라 말합니다. 영원한 영광의 빛을 가진 자들은 세상의 사라질 영광에 속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주목하여 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이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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