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성경통독

고린도전서 13-16장

조회 : 169 | 박인규

고린도전서 13장/ 유명한 사랑장입니다. (고전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 여기서 말하는 더욱 큰 은사는 궁극적으로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은사가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게 아무 유익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사랑에 대한 말씀을 주실 때 우리는 철저히 우리를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 사랑에 대한 말씀을 읽으면서 사랑이 없는 모습에 대한 회개가 먼저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게 되지만 온전한 것은 사랑뿐이어서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않고 영원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8절)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지만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여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다는 것입니다.(9-11) 우리가 버려야 할 어린아이의 일은 무엇인가? 자기가 중심이 되어서 말하고, 자기를 중심으로 깨닫고,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을 어린아이의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항상 자기 한 몸만 생각하며 자기를 위해서만 살아가던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 주님의 사랑을 알고 난 후에 장성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장성한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은 자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보고, 자기중심이 아니라 주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랑이 성도 안에 교회 안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사도 바울은 방언보다는 특별히 예언을 하라고 말합니다. 방언은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이지만, 예언은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방언은 자기의 덕을 세우는 반면에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방언은 통역이 없으면 자기의 유익을 위한 것이지만 예언은 교회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지만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방언을 하려면 통역을 하여 교회의 덕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방언이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주시면 좋은데 왜 방언 따로 통변 따로 주시는 것인가? 하나님의 계시는 세상의 죄를 드러내고 그 죄를 먼저 심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심판의 말씀을 먼저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심판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를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는 말을 방언으로 우리에게 주실 때,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 앞에서 말씀의 의미를 알지 못하여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고백해야 하며,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세계가 보여지고 열려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마음 안에서 통변도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히 방언은 좋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감사하다고 고백합니다.(18) 하지만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교회에 유익을 끼치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사랑을 아는 자의 모습입니다.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장성한 자가 되라 말씀합니다. 지혜는 교회에 덕을 세우는 것이고 악은 자기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는 교회를 섬기기 위하여 주어지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나의 유익과 만족이 아닌 형제의 유익을 위하여 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말씀합니다. 요즘 남녀평등시대에 불편한 말씀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 말씀의 본질은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신랑 되신 그리스도 앞에서 잠잠한 자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는 결국 교회의 덕을 세우는 모습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부활장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을 믿지 않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부활의 증인들을 말하면서 부활의 복음을 전합니다. 영원한 생명의 세계, 부활의 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헛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씨앗과 열매, 살려주는 영의 이야기를 통해 사도 바울은 부활의 복음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붙잡는 믿음이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하면서 만약에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을 것이요, 그리스도가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복음이 헛것이요, 또 너희의 믿음도 헛것이며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몸을 씨앗으로 보고 있습니다. 씨앗으로 죽어야 살아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씨의 모습이 죽어야 꽃의 모습으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몸을 씨앗으로 보지 못하고 완성품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 문제 삼습니다. 씨앗이 죽어야 다시 산다는 것을 무시한 채 단지 씨앗으로 살아가려하기에 부활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가 되어 영광된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서 부활해야 합니다. 장차 주어질 영광스러운 몸에 관심을 두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본질은 누군가가 살려주어야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아담이 생령이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어주심으로 생명을 부여받은 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아담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흙에 속한 자와 하늘에 속한 자로 나뉘는 것입니다. 흙에 속한 자는 아담에 속한 자이고, 하늘에 속한 자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입니다. 하늘에 속한 자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로서 살려주는 영이 그 안에 있기에 언제나 다른 생명을 살려주기 위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살려주는 영을 아는 자들은 영원한 생명이 자신 안에 있는 것을 알기에 세상에서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영생을 얻은 자가 되었기에 세상의 형편과 상관없이 언제나 하늘을 바라보는 자로 세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6장/ 사도 바울은 첫 번째 편지를 마감하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연보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예루살렘 교회로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편지를 보내는 것은 지금 자신이 에베소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데 에베소 전도의 문에 활짝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에베소에 아직 대적자들이 많아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렀다가 마게도냐를 지나 고린도에 올 것인데, 그러면 고린도에서 함께 머물며 겨울을 보내고, 예루살렘에 갈 수 있는 선교비를 마련해 달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 있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주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고린도교회가 동역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연보를 말하지 않고 연보를 하지 않는 것이 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연보할 수 있는 것이 은혜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고전16: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 고린도전서의 결론입니다. 지금 고린도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자기가 중심이 되어 사랑이 흘러나오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들입니다. 사도 바울의 마지막 인사말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끝까지 고린도교회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덧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