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성경통독

고린도전서 9-12장

조회 : 179 | 박인규

고린도전서 9장/ 사도 바울은 자신을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합니다. 이 변명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변명이 아니라 복음을 지키지 위한 변명인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사도권과 그의 신학에 대한 의심과 비판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고린도교회로부터 사도 바울의 진심이 무시를 당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사도 바울을 무시한 또 하나의 이유는 성령의 은사 때문입니다. 알고 보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받은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자랑할 것이 없는데,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자랑하면서 바울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복음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기에 내가 목숨 바쳐 복음을 전한다 할지라도 나는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다고 말하면서도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하여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고 말합니다.(19절)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를 얻기 위해 자유를 포기하고 종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관심은 전적으로 영혼구원에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유자가 되라고 하면서도 상을 얻기 위해 달음질하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상을 받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그 상의 은혜를 다 맛보지 못할까봐 달음질 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사로잡은 복음을 향하여 평생을 달려도 부족하기에 열심히 달음질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본보기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홍해를 건넜지만 정작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었습니다. 우상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말씀합니다. 우리는 나를 위하여 하는 모든 것이 다 우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출애굽의 일이 우리 모두에게 본보기가 되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가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11-13절) 우리가 축복하는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요,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성찬식에 참예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다는 표시이기에 성도란 그리스도의 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의 백성들입니다.(16-17절)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과 우상에 대한 지식이 있습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기에 우상의 신전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상관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20-21절) 사도 바울은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고 안 먹고의 문제는 사랑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행동의 기준은 형제와 복음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을 자랑합니다. 바울은 상에 대하여서도 형제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의 권리를 다 사용하지 아니한 것이 자기의 상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자유는 십자가를 알면 알수록 더욱 자유하게 되는 자유입니다. 죄와 율법, 죽음, 자기 자랑, 자기 의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의 이야기가 본보기가 되어 우상숭배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상숭배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주님과 사귀는 길입니다. 자기사랑 세상사랑에서 벗어나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친밀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가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며, 모든 것이 가하지만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라 말합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말씀합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은 우상숭배요 남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복음이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23-24절)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걸림돌이 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걸림돌이 되는 것은 결국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에 나오는 일입니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는 것입니다.(31-33절)

고린도전서 11장/ 교회 안에서 여자들이 머리에 무엇인가를 쓰지 아니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지만, 여자는 남자의 영광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기에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7-10절) 고린도교회에서 여자들이 은사를 받았다고 여성다움이 나타나는 수건을 벗어버리고 남자도 무시하고 설쳐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도 바울은 질서를 지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자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고 아내는 남편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의 질서가 되는 것입니다.(11-16절) 고린도교회 안에 성도의 교제를 위한 아가페 밀이라는 이름의 애찬이 있었고 이 애찬 후에 성만찬이 행해졌습니다. 이때 성도들은 저마다 가져올 수 있는 음식을 가져와서 함께 음식을 나누었는데, 이것이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교회를 분쟁으로 몰고 갔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분열로 나타난 것입니다. 당시의 주의 만찬은 애찬과 성만찬이 결합된 형태로서 애찬 후에 성만찬이 행해졌는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애찬에서부터 교제가 나누어지지 않고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하는 것입니다. 애찬과 성만찬을 일반식사로 전락시켜버린 것입니다.(20-22절) 사도 바울은 성찬의 의미를 정확하게 가르쳐줍니다. 성찬을 통하여 주님의 죽으심을 주님 오실 때까지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23-26절)

고린도전서 12장/ 성령으로 알 수 있는 신령한 것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저주할 자라고 하지 않고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 주님의 일, 하나님의 일이 다 같은 것이기에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들은 자기를 자랑하는 자가 아닌 주님과 하나님을 높이는 자가 되어야 하며, 성령의 나타내심은 그리스도의 몸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7절) 그렇다면 개인에게 나타나는 은사는 본질적으로 개인에게 능력과 힘을 주기 위한 은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의 유익을 위해서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은사란 구한다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시는 분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11) 그러기에 은사를 받은 사람은 자신이 받은 은사의 우월성을 자랑하지 말고 교회의 유익을 위해 은사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예수님과 한 몸이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한 몸이 되는 것이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서 차별과 자랑이 나오고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가 나타난 것은 그 은사로 그리스도의 몸을 섬겨야 하는 것인데, 그것을 자기의 의와 자랑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은사를 주신 것은 한 몸을 이루시기 위하여 주셨기에 그것은 어떤 차별이나 우열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한 몸을 이루시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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