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성경통독

로마서 13-16장

조회 : 185 | 박인규

로마서 13장/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말씀합니다.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본문의 말씀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만 이 말씀은 복음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권세자를 세워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생각하면 권세자를 세우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복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생각으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 됩니다. 선을 행하는 자(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는 권세를 뛰어넘을 수 있고 권세자가 두렵지 않지만, 악을 행하는 자(자기 주권으로 사는 자)에게 권세자는 두려움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는 것은 권력의 정당성을 따지지 말고 무조건 복종하라는 차원의 말씀이 아니라 권세자를 세워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라는 것이고, 이런 자들은 결국 땅의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는 모습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만 복종하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와 긍휼이 부어지는 것은 그렇게 이웃을 사랑하는 자로 살아가라는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결국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살아가라 말씀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옷으로 우리의 수치(죄)를 가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보혈이 우리의 죄의 수치를 가리워 주기에 이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 안에 있는 자만이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살아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비본질적인 문제로 싸우지 말라 말씀합니다. 먹는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하여 사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주인(하나님)이 상관할 일이지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문제 삼는 것은 우리가 음식을 먹느냐 마느냐 날을 중히 여기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주를 위하여 하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주를 위하여 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사람이고 그렇다면 무엇을 먹든 안 먹든 날을 구분하든 안하든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주를 위하여 사는 사람이 진짜입니다. 주를 위한 삶이란 행함의 문제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와 긍휼이 드러나는 삶을 말합니다. 형제에게 화를 내는 것은 주님의 몸 된 교회 공동체를 향해 화를 내는 것이며 형제에게 욕을 하는 것은 주님의 교회를 향해 욕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를 비난하는 것은 주님의 거룩한 교회를 비난하는 것이기에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형제를 실족하게 하거나 망하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런 은혜의 원리에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음식문제로 형제를 근심하게 하면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 성령 안에서의 의와 평강과 희락은 나의 것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통치 성령의 통치를 받을 때만이 누릴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런 나라가 하나님나라인 것입니다.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라고 말씀합니다. 복음과 은혜로 한 것이 믿음으로 한 것이고 율법과 종교로 한 것이 믿음으로 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옳게 보이고자 하는 것은 다 죄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지 아니한 것은 자기 의 자기 자랑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5장/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기쁨이 아닌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사는 자들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심으로 그 은혜로 우리가 세워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우리들 역시 은혜와 긍휼의 삶을 통해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기쁨을 자기의 기쁨으로 여기고 사셨는데 그 결과로 돌아오는 것은 비방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에게 돌아온 비방까지 기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 역시 하나님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여기고 살아야 할 것이고 그 결과로 돌아오는 비방에 대해서도 기뻐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신 것은 우리가 받을만한 자격이 있어서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비방한 자였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로서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지만 그러한 우리의 연약함을 예수님이 담당하심으로서 하늘의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안다면 우리 역시 서로를 받아주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허물이 있다고 해도 그 약점을 담당하고 받는 것, 이것이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에 편지를 쓰는 이유를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자신이 사도 된 것은 이방인을 복음에 순종케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일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선교계획은 로마를 거쳐 서바나까지 주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인데, 이러한 선교의 일에 로마교회가 사도 바울의 동역자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편지를 쓰는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예루살렘교회와의 중보요청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로 가기 전에 이방교회들로부터 받은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을 먼저 방문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 안에서 사도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 인해 사도 바울이 이방인교회에서 모은 헌금을 예루살렘교회가 거부한다면 사도 바울의 복음전도 사역에 엄청난 부담이 되는 상황이기에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에 이 문제를 기도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6장/ 바울은 자신이 로마에 가기 전에 로마교회 성도들을 위해 겐그리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자매 뵈뵈를 보내겠다고 말하면서 그 자매를 영접하고 도와줄 것을 부탁합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고 하면서 그들을 나의 동역자라고 말하고 있고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은 자들이라고 소개합니다.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고 하는데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가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 안에 있다면 그는 우리의 형제입니다. 그 형제를 대할 때 세상의 조건으로 대하지 말고 그에게 부어지는 주님의 은혜를 보고 대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문안인 것이다. 성도의 문안은 오직 서로에게 부어지고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만을 보는 것입니다. 성도는 서로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함으로서 감사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말씀합니다. 왜 교회 안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주님을 섬기지 않고 자신을 섬기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은혜를 허무는 자들에게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로마서의 결론입니다. 사도 바울이 서로 문안하라는 당부로 로마서를 마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안부를 묻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은혜를 나누며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가를 확인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이렇게 서로 문안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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