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성경통독

로마서 9-12장

조회 : 162 | 박인규

로마서 9장/ 사도 바울은 은혜 없는 지옥의 고통을 알기에 자신이 저주를 받더라고 동족의 구원을 향한 애절한 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만들어 가시는 은혜의 코드는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야곱을 긍휼히 여겨 구원하심으로 에서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오도록 이끄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의 긍휼히 여기심을 바라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셔서 구원하시는 것도 같은 원리요, 토기장이가 귀한 그릇과 천한 그릇으로, 긍휼의 그릇과 진노의 그릇으로 만드는 원리도 같은 것입니다. 누구를 특별히 대우하고 누구를 미워하는 감정의 차원이 아니라 긍휼의 그릇은 진노의 그릇에 대해서 오래 참으시는 모습을 통해서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관용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고, 진노의 그릇은 긍휼의 그릇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품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구원의 문제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남은 자만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원래 파멸이 작정 되었는데 남은 자만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자란 누구인가? 자신의 노력으로 남은 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파멸로 작정된 우리를 은혜와 긍휼로 덮으셔서 남은 자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자가 결국 남은 자로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는데, 그 의는 믿음에서 난 의라고 말씀합니다. 반면에 의를 추구하고 열심히 좇은 이스라엘은 의를 얻지 못했습니다. 믿음으로 얻는 의(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의)를 바라는 인생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이스라엘은 자기 행위로 얻는 의를 좇았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유대인의 문제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열심을 내어야 하는데, 자기 의를 세우려고 했기에 바로 이 모습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의 자리에 자기 의를 올려놓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열심은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기를 힘쓰는 열심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그 의로 말미암아 산다고 말했지만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모든 인간이 율법의 의에 대해서 실패를 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의를 이루시고 율법의 완성자가 되시는 예수님이 오셨고 이제는 예수님을 믿으면 살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진짜 부끄러운 인생은 주님이 찾으시는 의가 없을 때 부끄러운 인생이 되는 것인데, 주님이 주시는 의는 믿음으로 거저 주어지는 것이기에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일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원래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자기 부인이요 전적인 자기 포기이기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은 복음을 들어도 그 복음에 순종할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듣고 순종하여 예수를 믿는 것 같지만 사도 바울은 믿음에 대한 선택권이 우리에게 없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선택으로 믿음이 결정된다는 생각이 불신앙입니다. 내가 믿고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자기 믿음은 가짜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진짜입니다. 하나님이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을 향하여 온종일 손을 내미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열심이지 우리의 선택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사도바울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는다고 선포합니다. 절망 가운데 있던 엘리야에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칠천 명을 남겨 놓으신 하나님이시기에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역시 원래는 올바르게 행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믿는 자가 되었고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된 것인데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율법적 행동을 앞세움으로 은혜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의 실패를 통해서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이지 율법적 행동으로 되어 진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데, 이것이 유대인의 실패 속에 담겨진 풍성함의 은혜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실패 속에서 우리들의 실패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이 구원받았다고 해서 유대인들을 향해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자랑하다 실패했는데 너희도 자랑하면 버림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잘라버리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문다는 것은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온에서 구원자로 오신 분이 죄까지 모두 해결해주심으로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복음으로 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로 끝나지만 택하심으로 하면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원수 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하여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구원에는 포기가 없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자격이 없어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만물이 없고 주께로 돌아가지 않을 만물이 없습니다. 이 땅의 모든 일들의 원인과 결과는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몸을 드리는 다는 것은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은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갖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가 각각 다르며 은사에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의 자리에서 주님을 섬기면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증거 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말씀하면서 우리에게 삶을 요구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윤리적인 실천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복음적 삶의 모습입니다. 롬12:10-21의 삶은 도저히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고 지체로서 살아가는 자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주님이 나를 통치하실 때 우리에게서 이러한 삶의 모습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덧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