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성경통독

사도행전 13-16장

조회 : 202 | 박인규

① 사도행전 13장/ 제1차 전도여행이 시작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성령)은 안디옥교회에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하나님의 선교를 진행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일이 바로 우리들의 사명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성도로 부르시고 이 땅을 살아가게 하시는 것은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선교를 진행하시기 위함입니다. 제1차 전도여행의 여정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구브로 섬으로 가서 살라미에서의 사역합니다. 이때 마가 요한이 수행원으로 동행하게 됩니다. 바보에서 사역을 하며 총독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바보에서 다시 배를 타고 버가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에서 마가 요한이 되돌아가게 되고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사역이 진행됩니다. 사도 바울의 설교가 진행된 후 다음 안식일에도 설교해 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많은 사람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게 된 것입니다. 놀랍게도 다음 안식일에는 엄청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모였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설교자의 기대는 자신의 설교 능력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길 원하지만 설교자는 본질적인 말씀만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시기하는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냅니다. (행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 쫓아내도 선교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② 사도행전 14장/ 이고니온에서의 사역입니다.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고 말씀합니다.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의 선동으로 악감정을 품는 사람들이 생겨나는데도 사도들은 담대히 복음을 전합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복음만을 전할 뿐입니다. 두 사도를 돌로 치려는 자들로 인하여 루스드라와 더베로 도망하여 거기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무서워서 도망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방식으로 복음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루스드라에서 걷지 못하는 자가 일어나 걷게 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면서 바울과 바나바를 신적인 존재로 모시려고 하자 바나바와 바울은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여러분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하나님의 일하심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유대인들이 루스드라까지 와서 루스드라의 사람들을 충동하여 바울을 돌로 쳐서 거의 죽게 만듭니다. 바울은 다시 일어나서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루스드라로 다시 들어갑니다. 바울이 환난이 있는 곳으로 다시 들어간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환난으로 인해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믿음에 굳게 서도록 하기 위함입니다.(행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 성도는 환난 속에서 자신의 힘든 일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제1차 전도여행의 귀환과 선교보고가 이루어집니다.(21-28절)

③ 사도행전 15장/ 예루살렘 사도회의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와 유대로부터 내려온 자들의 다툼이 일어납니다. 복음에 율법을 더하는 문제(할례)를 가지고 싸우는데, 이 문제해결을 위해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선교보고를 하고 이방인들에게 있어서 율법과 할례에 대한 예루살렘 사도회의가 열리게 됩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되는 것이기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 하나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계속해서 예수 믿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할례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의 권면입니다. 야고보의 권면의 핵심은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다고 결정을 내립니다. 이것은 율법을 실천내용을 줄여주는 새로운 율법이 아닙니다. 이 규례의 본질은 유대인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배려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들입니다. 교회는 자신만 생각하는 곳이 아니라 언제나 옆에 있는 성도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기에 유대인들이 큰 걸림돌이라 생각하는 이 규례들을 배려차원에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삶이란 나의 즐거움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기쁨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은 전적으로 주님을 드러내고 주님의 나라를 드러내야 합니다. 형제에게 서로 짐을 지우지 말라 하지만 형제를 위해 스스로 삼가라 이것이 복음의 삶인 것입니다. 제2차 전도여행입니다. 전도여행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제1차 전도여행에서 되돌아간 마가 요한의 동행문제로 인하여 바울과 바나바의 큰 다툼이 일어납니다.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가고자 하지만 바울은 안 데려가는 것이 옳다고 하여 결국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2차 전도여행길에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의 문제는 교회 안에서도 주의 사명을 감당하다가 얼마든지 생각의 차이로 인하여 다툴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도가 서로 생각이 다르고 성격이 달라서 다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감정의 상함과 갈라섬으로 끝난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을 것입니다. 다툼과 갈등의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하나님의 본질적인 일하심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훗날 바울의 동역자가 된 마가 요한을 보게 됩니다. 복음 안에서 모든 것이 회복되는 모습입니다./ (딤후4:11, 몬1:24, 벧전5:13)

④ 사도행전 16장/ 루스드라에서 바울 일행에 디모데가 합류합니다. 아시아에서 계속 선교를 하려고 하지만 성령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왜 막으시는가?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 일행은 환상 중에 마게도냐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성령께서 열어주시는 길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이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은 세상에서 얼마나 크고 위대한 일을 하고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하심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에 참된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서 기도처를 찾다가 루디아를 만나게 되고 루디아가 빌립보교회의 동역자가 됩니다. 귀신들린 여종을 치유하다가 감옥에 들어갑니다. 감옥에서 찬양하고 기도하다가 빌립보 감옥의 간수에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오게 된 것, 루디아를 만난 것, 귀신들린 여인을 치유하고 빌립보 감옥의 간수에게 복음을 전한 것,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진행하신 일이었고 바울은 그저 순종했을 뿐입니다. 우리도 그저 순종하기만 하면 모든 일은 하나님이 진행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결과를 염두에 두지 말고 오직 하늘만 바라보고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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